박물관 에서

서울 공예 박물관에서...

쉰세대 2022. 1. 30. 23:37

서울 안국동 풍문여고 자리에 서울 공예 박물관을 지난 ( 2021년) 7월에 개관했다는 소식을 동생이 알려줬다.

원래 이곳은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의 집이었고

순종의 가례를 위해 건축된 안국동 별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 풍문여고가 되었는데

풍문여고가 강남으로 이전한 뒤 서울시가 사들여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먼저 갔다 온 동생이 이곳에 가니 이모(나의 친정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는데

언니가 가면 좋아할 거 같다고 추천을 한다.

코로나로 예약제로 하기에 검색을 했더니 2주 후인 10월 15일 오후 3시에 딱 두 자리가 있다.

얼른 예약을 하고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가겠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조금 걸어가니 서울 공예 박물관이 보인다.

 

 

도착 시간이 일러 먼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찾아간

좁은 골목안에 있는 북촌 손 만두...

우리 동네도 있는데 이곳에도 있어니 낯설지 않다.

 

 

모둠 만두와 얼큰 만둣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기분 탓인지 우리 동네보다 이곳이 더 맛있는 거 같다..

 

이 날이 10월 15일이라 담쟁이넝쿨이 아직은 예쁘고

 

열매도 많이 달려있다.

 

 

식사후 박물관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익살스러운 벽화와 예쁜 담장...

 

옛 풍문여교 교정과 운동장이 이제는 박물관 건물로 바뀌었다.

 

건물 뒷쪽에 특이한 건물이 어린이 박물관이다.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아주 큰 나무가 서있다.

 

 

입장 시간이 되어 들어가니 열 체크하고 손목에 팔찌를 채워준다.

시간마다 팔찌 색이 다르다.

이 색은 3시 관람객용....

관람 시간은 80분 이란다.

 

이층 상설 전시실.

삼층은 기획 전시실이었는데 가보지는 못 했다.

 

넓은 전시 공간에는 많은 공예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는데

시간이 어떨지 몰라 사진만 찍으면서 이동을 했다.

 

건물과 연결된 다리를 건너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보자기 할아버지로 알려진 허동화 선생님의 사진과 약력이 적혀있다.

검색을 하니

허동화 님은 "보자기 할배 허동화"라는 책을 출간도 하시고

우리나라 규방문화를 알리기 위해 많은 보자기와 자수를 수집하시었고

수집하신 작품들을 이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혼서지와 기러기...

혼인을 할 때 가장 귀하게 전하는 것이다.

 

얼마 전 시어머님 돌아기 셨을 때 산소에 이런 혼서지를 함께 묻어 드렸다.

 

여기에 전시되어있는 조각보나 보자기들은 모두

옛날에 사용하였던 것 들이다.

약간 색도 바래고 천은 낡기도 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이 모시 조각보는 특이하게 검은색 물을 들였다.

 

모시 조각보와 어린이들 옷이다.

이 조각보처럼 바느질한 이음새가 가늘어야 솜씨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조각 하나하나에 수를 놓은 손길이 섬세하다.

이것도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밥상보로 밥상을 덮어 놓고 외출한 가장을 기다리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밥상보에 반찬 묻는 걸 예방하기 위해 한지에 기름을 먹여 안쪽에 대었다.

 

 

이런 조각보를 보며 이종 동생이 나의 친정 어머니 생각이 났나 보다.

한복가게를 하신 나의 친정어머니는 한복을 마름질하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이런 조각보를 만들어 선물을 많이 하셔서

어머니의 지인들 집에 모두 한 장씩은 있었다.

요즘이야 필요도 없고 쓰임새도 없지만 옛날에는 이런 밥상보가 필수였다.

 

 

 

위의 베 조각보는 아직 우리 집에 몇 장 있다.

 동생이 이런 걸 보며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나 보다.

나도 어머니 생각이 난다.

 

돌잡이 애기 색동옷.

명주로 만들고 속에는 솜을 넣은 겨울용이다.

 

이 밥상보는 이음새 바느질이 투박하고 넓다.

얇게 비치는 옷이나 밥상 조각보는 이음새의 바느질이 그야말로 바늘 같았다.

 

나도 국민학교 다닐때 아래 모양의 책보를 싸서 들고 다니고

 남자학생들은 책을 보자기에 싸서 그림처럼 허리에 매고 다녔다.

우리때는 가방을 들고 다닌 학생들은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활옷에 온갖 기원이 깃들어진 자수가 섬세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정성이 보이는듯하다.

 

여자용 꽃신 "운혜"라고도 하고 "당혜"라고도 한다

 

"골무"

바느질할 때 오른손 검지에 끼고 하면 바늘에 찔리지 않게 하는 도구.

 

바느질할 때 사용한 도구들..

옷감의 길이를 재는 자에도 자개를 붙인 것도 있고 불 그림으로 장식한 거도 있다.

오른쪽에 있는 건 실을 감아 쓰는 실패..

 

다리미가 내가 본 것과는 모양이 다르다.

서울 지방에서는 저렇게 만든 것을 사용했나 보다.

 

앉아서 화장을 하는 화장대,

옛날에는 화장대를 "경대"라고 했다.

거울에 씌우는 경대 보인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 수가 화려하다.

 

허동화 선생님과 부인 박영숙 여사님.

부인 박영숙님은 치과 의사이셨다고 한다,

관람 시간이 80분이니까 쫓기듯 관람을 해야 해서

더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내가 어릴 적 본 물건이라든지 아직 우리 집에 있는

조각보를 보니 친정 어머니 생각도 나고 추억을 더듬을 수가 있었다.

 

돌아가시기 일 년 전.

우리 집에 마지막으로 오셔서 심심하시다며 이렇게 조각보를 만들고 계신다.

이렇게 만들어 며느리에게도 주고 딸인 나에게 주셨다.

연세가 많으셔도 ( 이때는 87세 ) 잠시도 손을 쉬지 않으시고

난 어머니까 낮잠 주무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

                                  ☞ 어머니의 작품,☜

집에 돌아와서 식탁 위에 있는 어머니 작품을 다시 바라봤다.

이 작품은 어머니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만들어 주셨다.

밥상보로 쓸 일도 없고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겠기에 표구를 해서 식탁 위에 걸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