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경찰서 가다...( 12월 20일,)

쉰세대 2023. 12. 28. 23:18

5월 어느 날,
늘 걷던 안양천을 걷고 집으로 오는 길 육교를 건너는데
바닥에 파란 종이가 보인다.
뭐지? 하고 보니 만 원권 몇 장이 뭉쳐져 있다.
누가 지나가다 흘린 모양이다.
순간 돈을 집어 들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혹시 잃어버린 사람이 뒤늦게 알고 헐레벌덕 올까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온다.
다시 그 자리에 두고 오려고  해도 육교 위이기에 바람이 불면 날아갈 거 같다.
그렇다고 한 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가슴이 방망이 질 하고 잃어버린 사람이 나중에 알면
얼마나 아깝고 속 상할까. 하는 마음에 어쩔 줄 모르겠다.

 

 

< 돈을 주운 육교 >
며칠 전 눈 온후 걷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진을 찍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차종지종을 이야기하니 
그런 물건은 주으면 안 되는데 왜 주었나고 하며
빨리 지구대로 가지고 가라고 하며
절대 액수를 세어보지 말고 지구대 가서 경찰 입회아래 세어보라고 하며
주머니에도 넣지 말고 돈을 든 그 상태로 가라고 한다.
근데 지구대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이 안 난다고 하니
검색을 해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라고 한다.
검색을 하니 늘 지나다니는 파리공원옆에 있다.

 

< 파리 공원 옆에 있는 지구대 >
 
부지런히 걸어 지구대 가서 신고하니
액수를 확인하고 언제, 어디서 습득했냐는 문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그리고 나의 정보를 다 적고 나왔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잃어버린 사람 생각하니 우울하다.
천 원만 잃어 버려고 아깝고 속상한데
제발 지구대 와서 찾아가면 좋겠다.
나도 현금을 안 가지고 다니는데 잃어버린 사람은 왜 현금을 가지고 나왔을까?
혹시 나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아닐까?
 
다음날 지구대에서 문자로 양천 경찰서로 넘겼다고 연락 오고
잠시 후 양천 경찰서에서 넘겨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문자 왔다.
지구대에 습득물 신고할 때 경찰관이 하는 말,
이 돈을 주인이 안 찾아가면 6개월 후에 습득해서 신고한 사람이 권리가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분실한 사람이 찾아갔다는 연락이 올까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다.
몇 개월 지나니 잊고 있다 그 육교를 지나올 때만 생각이 났다.
 

< 12월 20 일, 밤사이에 눈이 제법 많이 오고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다.>
 
몇 개월이 지나니 언제 그 돈을 습득했는지 생각이 안 났는데
우연히 다른 문자 확인을 하다 보니 지구대에서 온문자가 보인다.
5월 어느 날이었다.
계산을 해 보니 7개월이 지나갔다.

< 초여름에 돈을 주웠는데 어느덧 흰 눈이 내리는 한겨울이다,>
< 눈이 소복이 쌓인 우리 집 옥상,>
 
그리고 또 잊고 있었는데 양천 공원에 앉아 쉬는데 경찰관 2명이 지나가는 걸 보니
생각이 나서 받은 문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문의하니
양천 경찰서로 신분증 가지고 오라고 한다.
 
복지관 수업 끝나고 오는 길에 양천 경찰서로 갔다.
지은 죄가 없는데 괜히 무섭고 마음이 불안하다.
경찰서 들어가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왜 경찰서로 들어갈까? 하는 눈으로 쳐다볼 거 같아
기분이 묘하다.
 

민원실로 가서 이야기하는데 긴장이 되어 답이 안 들린다.
3층에 있는 "생활 질서과"라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3층으로 올라가는 데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계단의 숫자가 한 층이 32개가 된다.
우리 집 계단은 14개인데....
그리고 경찰서에 "생활 질서과"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형사과라는 표지판은 봤지만 참 생소한 과이다.
주민등록증을 복사를 하고 예금 통장도 복사를 하여야 하는데 
통장을 안 가지고 사서 계좌 번호를 적겠다고 하니
만일 잘못 적으면 다른 곳으로 갈지 모르니 
핸드폰에 은행 이체하는 곳을 캡처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경리과에서 보내니 일주일 걸릴 수도 있고
5만 원 넘으면 22% 세금 공제하고 보낸다고 한다.


경찰서에서 나와 경찰서 뒤쪽에 있는 커피 가게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양천 공원으로 왔다.

커피를 마시는데 눈이 나리기 시작한다,
눈이 들어간 커피가 더 맛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마음이 가라앉고 편해진다.
경찰서라는 곳은 죄를 지었건 안 지었건 참 불편한 장소이지만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곳이다.
죄 없는 내가 이렇게 긴장되는 게 우습기조차 하다..ㅎㅎ


하루가 지난 후
핸드폰 문자에 은행 통장으로 돈 입금했다는 문자가 왔다.
확인해 보니 22% 공제하고 입금되었다.
입금된 문자를 보니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생각난다.
그분도 새옹지마라고 생각하고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경찰서 가는 일은 지은 죄가 없어도 무섭고 긴장이 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