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방곡곡

철원 노동 당사와 백마 고지....( 5월 10일,)

쉰세대 2023. 6. 2. 23:38

철원 주상절리를 나와 점심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택시를 타고 다시 순담 주차장으로 왔다.
부지런히 택시를 타고 나와 우리 차로 바꿔 타고 갈 곳은 
철원 노동당사라고 한다.
노동 당사는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 ( 勞動黨舍)는 1946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6.25 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자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알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이런 모습이 6.25 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 올리게 해서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현재 철원 노동당 사는 철원군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고
2001년 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남편은 영상으로 만 봤는데 이곳까지 왔어니 보고 가자고 한다.
 

노동당사의 건물은 6.25 전쟁 때 포탄과 총을 맞아

곳곳에 총알 구멍이 나 있어 그때의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가 간 날이 남북 분단 681423 시간 57분 02초라고 전광판에 뜬다.

분단의 시간은 1945년 8.15일 일본의 항복선언을 가점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적혀있다.

내 생각은 휴전일이 기점인 줄 알았다.

 

바닥에 있는 시는 

시인 정춘근님의 " 6시와 12시 사이"에서 인용된 시구인데

분단의 슬픔을 공유한 시 라고 한다.

 

이 건물에서 옛 소련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2002년 문화재청 공인 등록 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앞에는 야생화만 무심하게 피어있다.

 

3층은 조선노동당 철원군당 사무실로 사용하고

2층은 고문실이나 조사실로 추정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사진이 한 장도 없어 추측만 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이 오래되었고 철근 없이 벽돌로 지은 것이기에

붕괴 위험이 있어 실내로 들어갈 수 없고 외관만 관람할 수 있다.

2층은 바닥이 완전히 내려앉았고 3층 역시 내려앉았다.

 

건물뒤쪽이 무너진 곳이 많아 위험해서

내려앉지 못하게 군데군데 철 기둥으로 받치는 공사 진행 중이다.

 

이 건물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 발해를 꿈꾸며"라는 

뮤직 비다오를 찍었고

영화 " 강철비"에서 남쪽 대표와 북쪽 대표가 만나는 장면도 찍었다고 

" 나무위키"에 적혀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보는 걸로 노동당사의 관람은 끝났다.

 

다음 행선지는 백마고지.

주차장에는 참전했던 우방국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백마고지의 상징, 백마동상.

 

백마고지 전승비.

 

전투 당시 사용했던 장갑차.

 

백마고지 전투비 앞에 하얀 영산홍이 애처롭다.

 

충혼탑으로 가는 길 옆 태극기와 자작나무가 사열병처럼 줄지어 서 있다.

충혼탑을 향해 올라가는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다.

 

열쇠부대 마크,

이곳의 관리는 철원군에서 하는 게 아니고

5 보병사단인 열쇠부대에서 한다고 한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젊은이들의 이름.

이 전투에서 한국군 사상자 3.396명.

중공군의 사상자가 14.000여 명.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영령이 된 젊은이들 이름을 보니

마음이 숙연하고 아프다.

모두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남의 나라에 끌려와 죽은 중공군의 젊은이들 참 억울하겠다.

 

이곳으로 간 날은 5월이었지만 

이 글과 사진을 올리는 오늘은

호국의 달 6월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

편히 잠드소서.

님들의 희생이 있어 지금 우리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마고지 충혼탑,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우리 장병들의 불굴의 정신을 기리는 백마고지 충혼탑.

충혼탑 옆 푸른 하늘에 힘차게 나부끼는 태극기.

이분들의 희생이 있어 지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승각 ( 常勝閣 ),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누각.

상승각에는 큰 종이 있는데 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철원지역 둘레길 시작점.

강원도에는 산 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철원평야가 넓게 펼쳐 저 있다.

토질이 좋아 철원 쌀 밥맛이 좋아 다른 지역 쌀값보다 비싸다.

백마고지의 전투에 승리하였기에

철원 평야가 우리 남한의 땅이 되었다.

 

건너편 백마고지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 조절하며 열심히 구경하고 있다.

나도 망원경으로 보니 백마고지에 초소가 몇 개 보인다.

 

앞에 보이는 낮은 산이 백마고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던지 약 30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고

고지의 주인도 24번이나 바뀌었다고 적혀있었다.

포탄을 맞아 산의 지형이 완만하게 된 모습이

말이 누워있는 모습이라 백마고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나무들이 자라 백마의 형상이 잘 안 보인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내려오는 길.

부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없기를 다시 한번 기원하면서...

 

주차장에서 나오는 길에 눈에 뜨이기에

차 안에서 찍으며 포탄인 줄 알았는데 미사일이라고 한다.

 

 철원 한탄강으로 갈 때 의정부 쪽으로 갔더니 길도 막히고 

신호등도 자주 걸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에

돌아오는 길은 문산으로 왔다.

일산쯤 오니 서쪽 한강에 일몰이 시작된다.

멋진 장면이지만 차를 세울 수 없어

차 안에서 몇 장 찍었다.

 

오늘 하루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다리도 가고

노동당사에도 갔고 백마고지까지 잘 다녔다.

백마고지에서의 처참했던 전쟁에 희생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다.

 

그저께 새벽 ( 5월 30일,) 느닷없는 스마트 폰에서 미사일 발사라는

위급 안내문자와 경계음이 울려놀라 깨었다.

잠시 후 오보라는 문자와 함께 해제라는 알림글이 왔다.

북에서 미사일 쏘고 전쟁이 난다고 해도 피난을 갈 수가 없을 거 같다.

어디에 이 많은 사람이 들어갈 피신처가 있으며

있다한들 가는 길은 얼마나 복잡할 것인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6월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