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향에서....( 11월 11~12일,)

쉰세대 2022. 11. 26. 23:35

작년 이맘때 시어머님께서 코로나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때는 코로나 가 너무 심해서 아이들이 (큰아들이 열이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러고는 어느덧 일 년이 지났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일 수가 없어니 고향에 갈 수가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일주기가 다가온다.
마침 묘사 ( 시제 )를 지내는 음력 시월이 되었다.
아이들과 큰댁 종손과 의논 끝에 11월 13~14일, (토요일과 일요일)에
묘사를 지내기로 하고 아이들도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작년 장례식에 가고는 한 번도 안 갔기에 빈집 청소도 하고 

준비를 하기 위해

하루 일찍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인 합천으로 가는 길,
하늘은 맑고 구름은 예쁜데
산 위의 빈 나무 가지는 쓸쓸하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니 초록색과 갈색의 나무들로 산이 물들어있다.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려서

산청 나들목에서 빠져 나왔다.

 

중간에 고속도로가 약간 막혀
6시간이 지나니 고향의 이정표가 보인다.

 

길옆 논밭에는 추수가 끝이 나고

남편의 고향인 합천군 가회면이 2Km 남았다.

 

똥뫼산 아래에서 보니 남편의 생가가 보인다.
왼쪽의 큰 기와집은 남편의 큰집 ( 백부님 댁 )이고
오른쪽의 슬래브 집은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친척 아저씨 집이다.
큰집과 친척집 사이에 있는 집이 남편이 태어 난 생가이다.

 

생가의 앞 집 감나무에 감이 달려있는데
왜 따지 않았을까? 하며 지나갔다.
이 감나무 집주인이 남편의 생가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살고 있다.

 

남편의 생가의 잠긴 대문을 여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집 마당에 언제부터 관리를 안 했는지 잡초가 자라서
완전 밀림이 되어있다.
관리하는 사람이 초여름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해 있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방치를 해 놓았단다.
작년 이맘때 어머니 초상 때 갔을 때는 깔끔했는데....

 

잡초가 시들었으니 이렇지 잡초가 한창 자랄 때는 완전 정글이었겠다.
호랑이가 나올 거 같다.

여름 한철에 이렇게 잡초가 자라다니 잡초의 성장이 무섭게 느껴진다.

 

재작년 5월에 갔을때는 이랬었다.

같은 집의 다른 모습....

 

내가 결혼을 해서 이 집으로 갔을 때는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었고
디딜방아 간도 있고 헛간도 있고 광( 창고)도 있었다.
그랬는데 시숙님이 다른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집을 비워두었더니
집이 엉망이 되고 사랑채와 창고가 필요 없어 다 해체하고 안채만 남겨두어
어머니께서 살고 계셨다.
마당은 밭을 만들어 이웃 사람이 농사를 지으며 집을 관리해 주기로 했다.

남편이 일단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낫으로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이튿날 시댁 집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삼가 장 날이다.
( 삼가 장 날은 2, 7일이다)
서울에서 준비를 해 가지고 갔는데 부족한 게 있어 구경도 할 겸 장에 갔다.

 

주로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지은 곡식과 채소를 가지고 오셔서 판매하고 계셨다.

 

도시의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투박하고 정감 있는 농산물들.
판매하시는 분들도 노인들이고 손님들도 대부분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

 

튀김도 있고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풀빵도 있다.

 

단감이 한 자루에 10.000원이란다.

오전 10시쯤 갔는데 벌써 파장인 거 같다.

 

아이들 오는 시간 맞추어 고향 오는 길목인 산청 원지로 마중을 갔다.
모두 모여 점심식사를 원지에서 하였는데
식사 후 케이크를 꺼내놓는다.

 

며칠 후 면 내 생일인데 이번에는 고향에 있으니
그냥 지나가나 보다 했는데 아이들이 케이크 준비를 해 오고
손주들은 직접 쓴 카드와 선물을 준다.
잊지 않고 챙겨줘서 고맙다.

 

시 증조부님의 산소가 있는 의령으로 향했다.

 

 의령에 있는 시 증조부모님의 산소에서 제를 지내고

 ( 아들에게는 고조부모님, 손주들에게는 5대 조 산소이다.)

 

종손이신 사촌 시동생이 처음 참석한 아이들에게 윗 조상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경남 의령에서 합천으로 오는 산길에 높은 재가 있는데

남편이 재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아래에 보이는 구불구불한 도로로 내려가야 한다.

 

하얀 국화꽃이 보라색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전망대 정자 옆 도로표지판에 " 호암 이병철 대로 "라고 적혀있다.
이병철 생가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가 보려고 했는데
빗방울이 떨어져 포기했다.

 

삼가면에 있는 벚꽃길.
벚나무에 단풍이 들어도 예쁘다.

남편의 생가가 집이 협소하여 아이들이 다른 곳에 숙소를 정했기에
아침 일찍 출발하여 왔어니 피곤하니 숙소로 가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오라고 하며 보내고
우리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