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향에서...

쉰세대 2021. 5. 19. 16:34

시댁 큰집에서 몇 달 전부터 윗대 산소 이장 준비를 하더니 이제 준비가 다 되었다고

5월 7~8일 동안 한다고 한다

남편도 참석해야 하니까 6일 출발을 했다

7일 이장을 할 거니까 가다가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오랜만에 국도로 가자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운전하는 사람이 힘이 들겠지만 

국도로 가는게 구경거리도 많고 나는 좋다.

옥천을 지나서 무주구천동 방면으로 가면 라제 통문 ( 신라와 백제를 통하는 작은 터널 )도 있고

주위 경치도 좋다.

가는 도중 종손인 사촌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온다.

몇 달을 산소자리 터를 닦고 축대를 쌓고 조성을 했는데 

막상 포클레인으로 파니까 물이 나와서 이곳으로 이장을 할 수가 없어

다른 곳으로 정해야 하니 빨리 오라고 한다.

대전에서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도착해서 남편은 산으로 바로 올라가고

난 비워두었던 집을 청소를 시작했다.

 

주인 없이 비워둔 집에도 작약이 멋스럽게 피어 나를 반긴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 나를 반기니 덜 을씨년스럽다,

 

대청에서 바라본 마을 앞산. 똥 뫼산.

똥 뫼산 태극기가 풍향계 역할을 한다.

이 날도 바람이 엄청 세게 분다.

 

내가 도착한 다음날이 옆동네 삼가 장날이다.  ( 삼가 장날, 끝자리가  2, 7, 일 )

옆집 아재께서 우리를 장에 자동차로 데려다주셔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이렇게 많은 작약을 심은 곳을 보여주셨다.

한약방을 하시는 분이 심으셨다고 하는데 정말 예쁘다.

 

난 집을 약 4Km 정도 남겨놓고 걸어가기 위해 내렸다.

 

혼자 신작로를 걸어가면서 만난 야생화들..

 

큰 이팝나무도 만나고

 

요즘은 농약도 드론으로 치나 보다.

몇 년 전 헬리콥터로 농약 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일할 사람이 없어니 업체에서 농약을 이렇게 치나 보다.

 

농가 담장에 소담스럽게 핀 불두화.

 

지금 황매산 철쭉꽃이 만발할 때이라서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까 봐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작년과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황매산 철쭉 축제을 하지 않는다.

 

가회 전투 전적비.

1951년 가회에서는 엄청 큰 전투가 있어 면사무소도 불타고

폭격도 심하였고 인명 피해도 많았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서니 흙담장에 담장이 넝쿨도 예쁘고 갖가지 꽃들이 피어있다.

 

시골은 이맘때가 제일 예쁘다.

 

시골 간지 3일 된 날....

이 날도 남편은 산소 이장 때문에 산으로 가고

난 운동 겸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들판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양파들.

이 고장에는 양파를 많이 심고 마늘도 많이 심는다.

얼마 후엔 양파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여 벼를 심는다.

 

집에서 약 15 분 정도 걸어올라 가면 만나는 연동 못...

여름에는 연꽃이 장관을 이루어 보기가 너무 좋다.

연못 가운데 있는 섬 같은 저곳에는 내가 결혼해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땐

큰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멋있었는데 이제 그 나무는 밑동만 남아있다.

 

운동길 중간중간에는 살구도 달려있고 매실도 열려있다.

 

 약 40분 걸어서 도착한 원앙 송 앞.

고향에 오면 이곳까지가 나의 운동 겸 산책코스이다.

걸어가는 도중에 뱀을 만나서 기절할 뻔했다..ㅠㅠ

 

위 사진 돌로 쌓여있는 이것이 선도대인데 옛날에 나쁜 일을 하면

멍석말이를 하여 벌을 준 것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산소 이장 마지막 날..

이곳으로 올라가니 아직 한창 공사 중이다.

오전에 끝날 거라고 했는데 시간이 더 지체될 거 같다.

 

****완성된 산소...****

 

산소를 이장을 하는 이유는

옛날에는 산소를 명당자리를 찾아 지관이 정해주는 곳에 주로 모셨는데

산소가 너무 높은 곳에 있기도 하고 같은 선산이라도 이곳저곳에 떨어져 계시고

나무와 풀이 너무 짙어 한 번씩 올라가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떨어져있는 산소를 한자리로 모시려고 공사를 시작했다.

 아래쪽에 모시려고 공사한 곳은

몇 년 전만 해도 농사를 지었던 곳인데

밭을 사용 하던 사람들이 모두 연세가 들어 일을 하지 못하여 묵혀두었더니

온갖 잡초가 우거져서 보기도 싫어 산소를 모시려고 공사를 했는데

물이 나와 모시지 못하고

 좀 높기는 하지만 이곳은 땅도 좋아 이곳으로 모시기로 했단다.

후손들이 올라가기 쉽게 도로포장을 하여 자동차로도 올라갈 수가 있다.

 

남편의 조상님이신 후보 공의 산소.

고성 李 씨 은암공파 23세 조상님 산소이다.

나의 남편은 30 세손이니까 7대 조부모님 이시다.

옛날 산소에는 비석과 상석을 한문으로 적었었는데

앞으로 후대의 자손들은 한문을 잘 모르니 모두 한글로 적었다.

 

집안 종부이신 백모님 산소.

7년 전에 104세로 영면하셨다.

지금의 종손인 사촌 시동생의 어머니 이시다.

종손이 나의 남편보다 한 살 적은데 큰집에 누님들만 다섯 명 낳고

종손인 아들을 낳어셨어니 종손이라도 사촌 중에 제일 나이가 적다.

 

새로 조성된 산소에서 내려다본 풍경..

원래는 아래쪽에 산소를 이장하려다 자리에 물이 나는 통에

부랴부랴 이곳으로 이장을 했기에 일도 많았고 돈도 많이 들었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나의 시댁은 시아버님 형제분이 3명이셨는데 나의 시아버님은 둘째이셨다.

그래서 시 백부님과 시숙부님이 계셨는데 모두 타계하시고

어른 중에는 나의 시어머님만 생존해 계신다.

이런 공사를 하려면 많은 금액의 돈이 필요한데 시조부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으로

집안의 큰일을 우리에게 모금을 안 해도 충분히 감당한다.

시조부님의 혜안이 있었기에 따로 준비해주셨어니

우리들에게 부담이 없이 이렇게 큰 공사를 할 수가 있다.

우리의 시조부님께서는 대단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남편의 사촌동생인 종손이 수지에서 고향을 몇 번씩 다니며

 힘든 일을 하시느라 엄청 고생을 많이 하셨다.

종손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옛말이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