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이야기

진짜 석파정에서....

쉰세대 2021. 7. 17. 22:01

지난 5월 대원군의 별서 라는 석파정을 찾아갔는데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석파랑이라는 식당에 있는 석파정의 일부인 별장 건물만

보고 왔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석파정이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운현궁에서 나와 석파정 가는 버스를 탔다.

이때는 거리두기 4단계가 아니어서 휴관을 안 했다.

지금은 올 스톱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석파정이 미술관과 함께 있는데 난 석파정만 구경하기로 했다.

이곳은 시니어 할인이 없다.

 

매표소 입구에 황소 그림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이중엽 작품인데 왜 이곳에 그려져 있지? 했는데

잠시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니 

이너스 홀이 있다.

몇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스크린 화면에 전 야구선수 박찬호와 안병광 회장의 모습이 나온다.

안병광 회장이 박찬호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석파정에 이중섭 판화 기획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황소 그림이 그곳에 있었나 보다.

 

신라 삼층석탑,

 

수령이 400년이 되었다는 모과나무.

오래된 나무에 모과가 달려있다.

 

사랑채,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본 풍경.

오늘은 날씨가 너무 맑은데 이곳은 비가 오면 더 운치가 있어 좋다고 한다.

들어올 때 입구에 있는 설명에"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곳"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면 

비가 와도 참 좋은 곳인가 보다.

비 오는 날 동생이 이곳에 왔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하니 

언젠가 비오는날 한번 와보고 싶다.

 

"천세 송."

사랑채 옆 수령이 600년 된 소나무.

이름대로 천세 송이 되려면 400년을 더 살아야겠다.

우람하고 멋있다.

 

이곳의 안내를 하는 분이 용을 보여주겠다고 따라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작으니 실망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한다.

용이 보이시나요.?

나무 가운데 자리한 용의 모습..

실물을 보니 정말 용의 모습이었다.

 

이곳의 유명한 코끼리 바위를 만나러 가는 길.

삼계동 산길로 올랐다.

 

올라가는 좁은 오솔길에 쉬어갈 수 있는 빨간 의자.

의자에 앉아 뒤를 보았다.

 

나무 사이로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코끼리가 보이나요?

비 오는 날 이곳에 온 동생은 관음보살이 보였다고 하고 ( 동생은 기독교인임 )

그 동생과 함께 온 지인은 피카소를 보았다고  한다.

 

입장권에 있는 석파정.

우리나라 정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창살무늬도 중국풍이고 모습도 중국풍이다.

 

석파정을 나오며 다시 한 컷...

 

이곳 석파정은 아름다운 경치와 주변 경관으로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겼다.

조선 후기 왕궁 소속 화가인 " 이한철의 석파정 병풍도"에서는 장엄했던 옛 석파정을 만날 수 있다.

그림을 배우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대원군은 가장 아끼는 석파정을 이한철에게 그려주기를 청했다고 해서

지형학적 정확도와 빼어난 기교가 돋보이게 석파정 모습을 담아낸 병풍 화이다.

석파정이라는 이름은 흥선대원군이 소유권을 가진 이후에 지어진 이름으로

대원군의 호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석파정은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던 안동 김 씨 가문의 소유였다.

대원군과 적대관계를 유지했는데 고종이 즉위하자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은 대원군을 향해 "하늘 아래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며

대원군의 섭정을 공공연히 반대를 했다.

 

흥선대원군은 석파정의 경치에 사로잡혀 김흥근에게서 소유권을 가져오기 위해 계략을 꾸몄다.

김흥근에게 석파정을 하루만 빌려달라고 청하자 거절을 못하고 승낙을 하자

아들인 고종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왕이 하루 룰 지낸 곳은 신성시되어 왕실 소속의 재산으로 귀속되었으므로

곧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탐이 났으면 유치한 방법으로 적대적인 사이인 사람에게서 빼앗았는지

경치를 보니 조금은 이해도 되고 

안동 김 씨에게 그동안 받았던 수모를 이렇게 갚았을 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