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길상사 에 가다.

쉰세대 2019. 9. 22. 22:28

 

명륜동에 계시는 큰이모님에게 추석지난 인사도 할겸 이모님댁을 향해

지하철 4호선을 탔다.

혹시 집에 안계시면 어쩌나 하고 전화를 드렸드니 안받으신다,

이모님이 집에 안계시나보다.

지하철은 탔고 잠깐 어떡하지하다가 평소에 가고싶었던 길상사를 가기로 했다.



 

 

삼각산 길상사 일주문,


 

일주문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인 랩스커트들...

스님들께서 참선도 하시고 정진하시는곳이니까 예의를 지키는게 좋을듯하다,

외국 사찰이나 수도원에 가도 이렇게 랩스커트를 착용하라고 한다.


 

    맑고 향기로움이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경내에 들어서니 이 꽃들이 반긴다.

어떤 사람은 이꽃을 꽃무릇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상사화라고 하기도 한다.

나도 이꽃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실제로는 예쁘고 스마트폰에서도 색갈이 화려하며 예쁜데

이곳에 올리니 색갈이 흐릿하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데도 경내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혼자갔기에 어느분과 서로 찍어주고...


 


 

 

 

탑돌이는 세번만 하고...

 

이 설명서를 읽다보니 아는분의 성함이 적혀있다.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은 화곡동 우리가게근처에서 모자공장을 운영하시던분으로

덕망높은 화곡동의 유지 이셨다.

 

 







약수는 있는데 먹지는 못한다고 적혀있다.




가방에 있던 동전 다 털어넣고.





        능소화가 마지막으로 빛을 내고있다.





이 꽃을 저마다 마음에 들게 카메라에 담는 분들이 많다.



      법정스님이 머무시던 진영각.



 

  * 법정 스님*

1932년~2010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와 진리의 길을 찾아

1956년 효봉 학눌의 문하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기초를 다진 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해인사,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 했다,

1960년 부터 1970년 송광산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을 했다.

하지만 세상에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다.

1994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하여 이끌어주었고.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김영한여사가 성북동의 대원각을 무주상 보시하여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였다,

2010년 3월 11일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하였다.

저서 및 역서로는 "무소유""버리고 떠나기""물소리 바람소리""화엄경""숫타니파타"등이 있다.


  *이글이 흐릿해서 사진을 확대해서 적었다,*






                법정스님이 불일암에 계실때 앉았다는 의자.

             실물과 사진,




      법정스님이 머무시던 "진영각"

      스님의 성품대로 단아하고 검소하며 조용하다,




        들어가면 안되는줄 알고 문을 조금 열고 합장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다른 분들이 들어간다.




         머무시든 거처옆에 스님을 모신곳이 있다.

        보통 유명스님들은 부도에 모시는데 법정스님은 이곳에 계신다.



                   

                  앙증맞고 귀여우신(?) 부처님 형상.









        *공덕주 길상화 보살*

     ( 본명 김영환 /1916~1999 )


  김영한님은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16세 나이로 뜻한 바 있어

금하 하규일 문하에서 진향이란 이릠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 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생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등의 저서를ㄹ 남겼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평의 대원각 터와 40여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법석에서

김연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길상화 라는 불명을 받았다.

길상화 보살이 된 그녀는 "나 죽어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현 뒤 뜰에 뿌려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옷을 ㄹ벗었다.

다비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현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 21일 이 자리에 공덕비를 세웠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본명 백기행 /1912~1996)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곬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곬로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벌서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곬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것이 아니다

   세상같은건 덜어워 벌이는것이다


   눈은 푹푹 날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것이다

             "1937년 겨울에 쓴 최초의 원문"

  *마가리:오두막의 방언 *출출이:뱁새의 방언  *고조곤히:소리없이,고요히.


       *윗글도 비석에 있는 원문을 그대로 적었다.

이 시중에 나타샤가 김영한 이었나보다,









다라니 찻집에 들어가면 중앙에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셔놓았다,




찻집옆으로는 도서관처럼 많은 책들이 있어 여유롭게 책을 읽을수도 있어 좋다,











나는 오미자 차 한잔과 약과를...



차를 마시며 간단한 이 책을 읽었다.



책 내용중에 백일장에 수상을 한 작품들이 실려있는데

초등학생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다.



다원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가보고 싶었던 길상사를 얼결에 가서 여유를 부리며 산책도 하고

차도 마시고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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