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이른아침 성수동 사시는 남편고향친구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산호수공원에 바람쐬러 가잔다.
바같날씨는 좋은데 공휴일이라 사람 많은곳가는건
딱 질색이라 아무곳에 갈 예정이 없었는데
이분들은 이날 아님 시간이 없다기에..
친구 전화를 받고는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호수공원으로 고고...
몇시간을 돌고 나니 지인분이 힘들어 하셔서 아쉽지만 욕심대로 다 못보고 왔다.
정발산역 광장.
사과를 들고있는 어머니상..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엑스트라없이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
동화의 주인공 인형들이 곳곳마다 있고...
싱가폴 상징..
관심을 가지고 약간의 후원을 하는 유니세프 관..
만나니 반갑다.
하늘은 나르는 드론.
이꽃은 몇년전 미국친구집에서 처음 봤는데 이제 우리나라에도 눈에 많이 띈다.
인디언 쿠스코 공연도 하고..
또 다른 무대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수상 꽃배를 타는 사람들과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시원하고 좋겠다.
근데 표를 사고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게이트를 벗어나서 호수 잔디밭에서 식사를 하기위해
나갈려니 이렇게 손목에 도장을 찍어준다.
재입장 을 허락하는 증표.
박람회장 바같쪽..
호수엔 물도 맑고 고기도 많이 있다,
그리고 꽃도 만발하고...
다시 재입장..
앙증맞은 화분위의 소품들..
돋보기를 통해서야 보이는 아주 작은 분제.
일본작품이다.
꽃잎으로 예쁜 그림을 만들고 있다.
스크린을 텃치하면 그림모양이 변한다,
애들이 신기해하며 즐기고있다,
형형색색의 튤립이 자태를 뽑내고 있고
건물벽 스크린에 내가 보이면 손을 흔들어주세요.
친구부부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계신다,
정발산역으로 오는 길목에 만국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아까 들어갈때 못 보았던 위안부의 소녀상이 있다.
난 이소녀상들을 볼때마다 이동상을 제작한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갈때 시기가 1930년 후반부터 해방되기 직전까지인데.
그때 우리나라 소녀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단발머리가 아닌 뒤로 한가닥으로 땋아서 댕기로 묶은 모양인데
이동상들은 모두가 단발머리로 제작되어있다,
이동상의 연배는 지금 연세가 거의 90세 이상인데 어째 이런 머리로 제작했는지?
너무 고증도 안하고 자기생각되로 제작되었다.
내가 6.25이후 어린시절 부산이라는 대도시에 살았는데 나보다 조금 위의 언니들도 대부분 머리를닿아서 댕기로 묶었고
한복을 입고 다녔다,
6.25이후의 부산의 모습도 그랬는데 해방전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도 99%이상이 머리를 땋고 있었는데
이 동상제작한 사람은 시대 배경을 너무 모르고 이동상을 설치한 사람도 이시대를 너무 모르는것 같다.
해방전 학교를 다니는 우리나라학생들 머리사진을 봐도 머리를 땋고 있다.
이 단발머리는 일본소녀들이 하고 다닌 스타일이거나
소녀의 부모들은 친일파이었을것 같아 딸이 위안부에 안끌려갔을것이다,
내 생각은 다시 제작하여 후세의 우리나라사람들과 세계의 모든사람들에게 바르게 알려졌어면 좋겠다.
연세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일인데 정말 마음에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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