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이야기

창경 궁의 늦은 봄...( 4월 10일,)

쉰세대 2024. 4. 16. 23:23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 날이다.
집 근처 초등학교 체육실에서 투표하고
능소화 묘목 한 그루 사기 위해 종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생각하니 묘목만 사서 오는 게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오랜만에. 창경궁에가서 봄을 즐기고 싶었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조선시대에 왕이 백성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창경궁 홍화문 앞에서는 달랐다.

홍화문 앞에서 영조는 균역법에 대한 찬반여부를 백성에게 직접 물었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회갑기념하여 백성에게 손수 쌀을 나누어 주며

기쁨을 같이했다.

창경궁 설명서에서.

노인네라 무료 입장권을 발부해 준다.

매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창경궁의 설명서....

관람권을 사람이 확인하지 않고 

이 기계에 관람권 QR을 대면 확인이 되어 입장하면 된다.

한 사람의 일자리가 또 줄었다.

 

외국인 부부가 한복을 입고 안내도를 열심히 보고 있다.

한복 치마 안에 입은 속옷이 너무 펼쳐져있어 별로 예쁘지 않다.

 

옥천교를 건너 명정문으로 들어갔다.

옥천교 아래 흐르는 물은 

모든 궁궐 마당에는 시냇물을 흐르게 하였는데

이 시냇물은 궁궐의 안쪽과 외부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뒤에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가 되라고

궁궐 앞쪽에 일부러 낸 물길이다.

이를 금천이라 부른다.

창경궁 금천 옥천이라 부르는데,

이 옥천에 놓인 다리를 옥천교라고 한다.

 

명정전 품계석,

 

명정전 옆 문으로 들어갔다.

 

문을 통과하니 넓은 정원이 있다.

 

설명문을 보니 궐내 각사라고 설명되어 있고

일제 강점기에 동물원으로 바뀌었다가

1980년대 궁궐 정비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내가 1972년 결혼하여 서울로 왔는데

이곳 동물원 구경 와서 호랑이를 본 기억이 있다.

 

넓은 마당에 민들레와 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아주 오래된 벚나무에 꽃이 만개하여

모두 이곳에서 사진 찍느라로 정신이 없다.

 

보물 제351호, 관천대,

관천대가 무엇하는 곳인지 설명이 없다.

 

종묘로 가는 사잇길인데 지금은 이곳으로는 갈 수가 없고

통합관람체계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병아리 꽃나무,

처음 보는 꽃인데

뿌리가 빈혈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고

콩팥등의 신장 기능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함인정,

관람에 지친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쉬고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이미 천년을 살았는지 죽어있다.

 

우람하고 멋진 향나무,

 

한복을 입은 모습이 예쁘지 않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한복이 아니고 국적불명의 옷이다.

 

 

경춘전,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났고

혜경궁 홍 씨가 승하한 곳이다.

 

 

통명전,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중심 공간으로 규모가 크다.

희빈 장 씨가 인현왕비를 저주하는 흉물을 통명전 일대에 묻었다

사약을 받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 대청마루에 한참을 앉아 쉬며 옛 궁궐의 여인들을 생각하였다.

 

통명전 마루에 앉아 바라본 풍경.

 

통명전 뒤쪽에 있는 자경전 터,

이곳에 있었던 자경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위해 자경전을 지었는데

지금은 자경전 터만 남아있다.

 

 

성종 태실비,

설명이 아래에 있기에 나는 생략한다.

외국인 두 분이 설명을 유심히 보고 계신다.

 

춘당지,

원래 춘당지는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파 헤쳐 큰 연못을 만들었고

1983년 이후에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새로 만든곳이

오늘날 춘당지이다.

 

 

춘당지 옆 팔각 칠 층 석탑,

 

 

창경궁 대온실,

1909년에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일제는 1907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온 것과 때를 맞추어

창경궁의 전각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09년에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이지만 그 목적이 궁궐의 권위를 격하시키려는 데 있었다.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규모가 작지만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와건축적 의미를 지닌

근대의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은 근대문화유산의 의미를 가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온실에 들어서니 아는 꽃이 있어 반갑다.

 

 

 

규모도 작고 몇 번 왔던 곳이라 대강 둘러보고 

나왔다.

백송나무,

백송은 나무껍질이 하얗고 껍질 조각이 저절로 떨어지는 

특성이 있으며 잎은 3개씩 모여난다.

중국이 원산지인 희귀한 나무로 조선 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와 심었다.

현재는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설명문에서....

다시 춘당지로 가서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 쉬었다.

궁궐에는 앉아 쉴만한 의자들이 별로 없다.

 

내전 터에 고양이 몇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다니다

관람객의 모델도 되어주고 한다.

 

느릿느릿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3시가 넘었다.

오랜만에 천천히 구경을 했다.

 

전각이나 춘당지등 설명은 입구에서 받은 설명서를 보며

나도 공부하고 이렇게 적을 수가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프다.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광장 시장을 찾아갔다.

광장시장에 외국인들이 절반은 되는 거 같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비빔냉면을 주문하였다.

 

비빔냉면에 열무김치와 무생채와 양념이 듬뿍 올려져 있다.

맛도 그저 먹을 만했다.

 

종로 5가 꽃시장에 도착하여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며 지나갔다.

시기적으로 좀 빨라서 인지 물건들이 재작년 명자 묘목 사러 왔을 때 보다

많지 않다.

 

 

가격을 물어보니 3만 원이라고 하신다.

너무 크기도 하고 내 예상보다 높은 값이라고 하니

며칠 후면 작은 묘목이 올 거라고 하기에

또 나오기 싫어 가격을 싸게 파시라고 했더니

25.000원에 주신다.

 

능소화 묘목이 키가 너무 크다,

지하철 타고 갈 거라고 하니

사장님이 윗부분을 잘라주신다.

 

묘목이 과일나무도 있고 꽃나무도 많이 있다.

 

예쁘고 처음 보는 다육이이다.

하트모양도 예쁘지만 꽃송이처럼 생긴 다육이가 마음에 든다.

능소화 묘목이 무거워 다육이는 사지 않았다.

 

9년 전 이 집을 구입해서 올 때부터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대추를 제법 많이 수확했는데

작년에 대추나무가 병이 들어 대추도 안 열리고

잎들이 말라죽었다.

 

이 나무를 자르려고 해도 우리는 엄두가 안 나고

자르는 사람을 부르려면 꽤 많은 돈을 원할 거 같아

이 대추나무에 능소화를 올릴 계획이다.

전에 살던 집에 은행나무가 큰 게 있어 옆집으로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유리창을 깰 거 같아 인부를 불러 잘랐는데

그 당시 20만 원을 달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 감나무를 심었는데 감나무가 또 너무 커서 자르는데 

그때도 20만 원을 주었기에 

이 대추나무는 자르지 않고 능소화를 심자고 했다.

 

능소화를 심고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 메었다.

 

명자꽃이 아직 피어있고

나리꽃의 새순도 올라오고 있다.

 

길옆 작은 화단에 나리꽃도 심어져 있고

명자 꽃도 심어져 있고 이제 능소화까지 심었는데

예쁘게 꽃피어 지나가는 행인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다.

 

능소화를 심어 두고 옥상에 올라갔더니

어제 조그마한 아스파라거스가 이렇게 자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