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너무 오래 기승을 부리니 내가 항복을 해야겠다.
너무 더운 날씨에 산책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우리 집은 서남향이라 오후 3시부터 햇볕이 내방과 거실에 가득하다.
그러니 햇볕이 다 차지한 내 방에 있을 수 없다.
그래....
오랜만에 겸재 정선 미술관에 가자.
그곳은 시원할 거야...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출발~~~~~~


지하철 9호선 양천 항교역에서 내려
미술관 쪽으로 가면 작은 로터리에 <양천 현아지>라는 알림 비석이 있다.
양천(陽川)이라는 고을의 명칭은 1310년(고려 충선왕 2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양동 239번지에 있었던 양천현아는, 중앙에 현청(동헌)인 종해헌.
그 동쪽에는 객사인 파릉관, 북쪽에는 향교가 있었다.
이를 일컬어 읍치라 하였는데 반경 200m 이내의 음치는 우리나라에서 양천현 읍치가 유일하다.
종해헌 남쪽에는 아전들이 있는 길청, 향청의 동쪽에는 장교청,
그 앞의 좌우에 창고가 있었다.
종해헌 부근까지 강물이 들었으며 부근 궁산 기슭에는 소악루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경치 또한 절경이었다.
현재 궁산에서 한강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소악루의 현 위치는 원위치가 아니고
파릉관에 부속되어 객사의 동편 산기슭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현재 관아의 혼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양천 현령으로 지낸 겸재 정선(1676-1759)의 <양천현아> 등 그림을 통해
당시의 건물 배치 형태를 알 수 있다.
정선은 65세부터 70세 되던 해까지 만 5년간 현령으로 근무하면서
이 지역의 명송지 들을 진경산수화로 남겼다.
< 비석의 설명,>

궁산 근린공원과 겸재 정선 미술관이 길 하나를 두고 이렇게 마주 보고 있다.

오늘은 궁산을 먼저 오른다.



중간쯤 오르면 쉼터 탁자가 있고
옆에는 산스장도 있어 근처 주민들이 건강도 챙기고 산책도 하면 좋을 것 같다.


얼마 오르지 않아 눈앞에 예쁘고 아담한 정자가 나타난다.



< 목면조돈 이야기 >
알기 쉽게 만화로 설명해 두었다.
1740년 (영조 16년)에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 선생은 두 봉우리를 품에 안고 있는
목멱산(옛날의 남산이름)에서 떠 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 왼쪽 첫 그림.>
겸재 선생은 곧바로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친구이자 진경시(眞景詩)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에게 알렸다.
이 편지를 받은 사천 이병현은 남산의 일출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는 답을 보냈다.
<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이에 겸재는 이병연의 궁금함을 답하고자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다.
겸재 선생의 그림을 본 이병현은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긴 후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 목멱산에서 아침해 돋아 오르다"( 木覓朝暾)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른다.
< 이병현>
여보게 겸재,
자네의 그림을 보고 시 한 수 적어보았네.
겸재의 그림과 사천의 시를 통해 우정을 나누던 "시화환상간"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각각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 만화의 글*

이 정자 이름은 < 소악루>
겸재선생이 이곳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곳 궁산에서 바라본 경치 그림들.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의 풍경.
겸재 선생님이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을 때에는 어디까지 보였을까?

오늘은 냉동실에 있는 쑥떡을 가지고 나왔다.
오늘은 커피가 아니고 컴포즈의 인절미 빙수이다.
올여름 난 이 인절미 빙수와 사랑에 빠졌다.
주문할 때 에스프레소 원샷을 추가하면 아주 맛있고 시원하다.
소악루에서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아래 벤치에서 먹었다.

아파트에 가려 북한산이 제대로 안 보인다.
저 아파트 주민들은 한강 뷰때문에 훨씬 더 비싸게 구입했겠지.

건너 난지도와 그 아래 메타쉐쿼이어 와 강변 북로가 보이고
가양대교가 한강을 가로지르고 바로 아래 올림픽 대로에는 자동차들이 쏜살 같이 달리고 있다.
지금 겸재 선생님이 계신다면 이런 모습도 그림을 그리실까?





소악루를 옆에 두고 정상을 오르니 양천 고성지라는 비가 있다.
<서울 양천고성지>
양천 고성지는 조선시대 양천현의 주산인 궁산(宮山)에 있는 테화식 산성터이다.
궁산은 한강변에 있는 해발 74m의 나지막한 봉우리이다.
궁산의 남쪽에는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나고, 한강 건너편 북쪽에는 행주산성이 있다.
양천 고성은 궁산의 정상부에 있는 둘레 200m 정도의 평지를 둘러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성벽의 길이는 218m이다.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은 토석혼축성으로 추정된다.
몇 차례의 지표조사에서 통일신라의 토기 조각과 기와조각이 많이 나왔고,
강건너에 있는 행주산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볼 때,
양천고성도 통일 신라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 산성등과 함께 한강 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성이었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기 전에 이 성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 비문에서...>


정상 오르는 길 숲에는 편안하게 생긴 선베드가 있는데
앉아 보니 별로 편하지 않네.



궁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겸재 정선 미술관 뒤편인데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큰 붓이 있다.

미술관이 언덕에 있으니 정문까지 내려오는 길이 3층 높이이다.

겸재 정선선생님의 모습.
무엇을 바라보고 계시는 걸까?

미술관 전경.
겸재 정선 선생님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강서구청장)으로 있으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등 기념비적인 불멸의 걸작을 남겼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2009년 4월, 강서구에서
정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를 계승 발전 시키고자 조선시대 양천현아지 인근에
겸재정선미술관을 개관하였다.
<겸재정선미술관, 소개지에서.>



위의 그림에 대한 설명.
디지털 영상으로 색채와 금강산 모습을 더 뚜렷하게 표현해 두었다.


1층 로비의 그림들.


1층 전시실에는 < 유근택 개인전,> < 숨.>이 전시 중이다.
8월 4일부터 10월 22일까지,


1 전시실에는 나이 든 여인의 모습의 그림으로 꽉 차있다.
누워있는 모습이 모두 늙어 힘들고 지쳐 보이는 표정과 편치 않은 모습이라
몇 장만 찍고 얼른 나와버렸다.
몇 년 후의 내 모습 같아 보기 싫었다.





작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는데
설명에 "안과 밖"이라고 하니 조금 이해가 된다.

설명은 없지만 나의 시선에 아늑한 실내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의 눈 오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작가의 생각은 아닐 수도 있겠지.



위의 안과 밖이라는 글 이외는 작품명이라던지
설명이 없다.
관객들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뜻인 것 같다.



2층 기념실에는 겸재 선생님의 원화와 관련 화가들의 원화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3시 30분에 해설사가 겸재선생의 그림을 해설해 준다.
들을 때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금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네.








봉우리마다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 옛날 교통도 불편하고 신발도 불편하였을 텐데
기껏해야 나귀를 타고 갔을 건데 여러 번 간 게 상상이 안 된다.
함께 간 하인은 더 형편없는 짚신을 신고 짐을 지고 나귀를 몰고 가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림 감상하면서 별 생각을 다 했다.
















↑↑↑↑
上: <서원소정도,>
下: <서원조망도,>

위의 그림 <서원소정도와 서원조망도>에 대한 설명.

< 청풍계도,>













내가 자주 가는 선유도가 옛날에는 이렇게 제법 높은 산 봉우리였다고 한다.


디지털 영상으로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이곳은 겸재선생 미술관인데 원화는 13점 정도 소장하고 있다고 설명서에 적혀있는데
전시관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적혀있다.
위의 그림 금강내산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있고
이 그림은 확대영인본이라고 한다.
원화가 아니고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정밀 영인본"이다.
몇 년 전 고 이건희 회장의 돌아가신 후 리움 미술관에 소장했던 "국보 제216호인 인왕제색도"를
이곳에 유치하기 위해 청와대에 청원도 하고
국민 청원도 했는데 이곳에 왔을까 하고 해설가님께 물어보니 못 받았다고 한다
그때 나도 국민청원에 한표 보탰는데....
사진을 올리다 보니 찍을 때 바로 찍으려 노력했는데 그림들이 모두 비스듬하게 누웠거나
기울어져있어 보기가 좋지 않다.
그래서 나름 바로 세우는 작업을 했음에도 마음에 안 든다.
위를 맞추면 양옆이 비틀어지고 양옆을 맞추려니 위아래가 역 삼각형이 된다.
사진들이 모두 비틀어져있는 게 내 손이 문제인지 내 마음이 비틀어진 건지...
이게 나의 사진 찍는 솜씨의 한계인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는 전시회 가면 사진을 안 찍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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