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먼 길 떠나시고....
나의 친정 외가는 경상북도 청도이고
어머님은 6남매의 맏이이시다.
어머니 아래로 외삼촌 두 분이 계셨고 이모님이 세분이시다.
그중 막내이모님은 젊은 나이(59세)에 제일 먼저 먼 곳으로 가시고
그다음은 나의 친정어머님이(88세)에 돌아가시고
순서대로 외삼촌 두 분 돌아가셨고
두 분의 이모님만 생존해 계셨다.
큰 이모님은 명륜동에서 막내딸과 함께 계시고
작은 이모님은 부천에서 아들 내외와 계신다.
얼마 전 2월 어느 날,
암으로 힘들어하시든 큰 이모님께서 92년의 삶을 마치셨다는
슬픈 소식이 날아왔다.
나의 어머니 자매들은 우애가 좋기로는 아무도 따라가지 못한다.
맏언니인 나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모님들이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시고 누가 봐도 정말 본받을 만한 어른들 이셨다.
그래서인지 나의 이종 사촌들도 모두 친 자매처럼 잘 지낸다.
내가 이종 사촌 중에 제일 맏이이고 제일 어린 동생과는 19살 차이가 나는데
여행을 가든 모임을 하든 나를 챙겨 함께 한다.
이모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리에 친정어머니 보낼 때처럼 황망하고 슬프다.
이모님 장례식은 서울 대 병원 영안실에서 거행하였다.
나는 장례식장을 가서 이모님 배웅을 하였다.
어머니의 자매 중에 이제 작은 이모님 혼자 남으셨다.
작은 이모님은 언니인 큰 이모님을 참 많이 의지하시며 정답게 지내셨다.
혼자 남은 작은 이모님이 아주 많이 슬퍼하시겠기에
나는 발인 날은 혼자 많이 슬퍼하시고 적적해하실
부천 작은 이모님에게 가서 위로도 하고 말동무도 할 겸 함께 보냈다.
작은 이모님의 딸들은 산소 갔기에 혼자 계셨다.
작은 이모님의 아들 내외가 해외여행 중이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이 마침 큰 이모님의 삼우제였는데
큰 이모님 댁 이종 동생들이 삼우제에 가는 시간 맞추어
작은 이종 동생내외와 여동생이 산소에 간다기에 나도 산소로 함께 갔다.
용인공원 산소에 가는 길에 들른 "호암 미술관 "희원"
교통 체증이 있어 길 밀릴까 봐 일찍 나섰더니
생각보다 원할이 잘 빠져 너무 잘 빠진다,
큰 이모집 동생들이 산소에 오는 시간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할 거 같아
시간 맞추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호암 미술관은 휴관일이다.
어차피 우리는 미술 관에 갈 시간이 없기에 정원만 들러보기로 했는데
정원만 산책하는데도 주차비를 받는다.
이 날이 미술관 휴관일이라서 인지 사람이 없어
조용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희원을 천천히 돌았다.
몇 년 전 이곳 호암 미술관에서 "김환기 전시회"를 보러 왔을 때와
다른 계절이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호암 미술관 건물이 경주 불국사와 비슷하다.
호암 미술관 정원 희원의 예쁜 꽃담.
너무 멋스럽고 예쁘다.
마음이 슬프고 쓸쓸하니 경치도 호젓하다 못해 쓸쓸하다...
주차장옆 호수.
문인석들.
호수에 거대한 거미 조형물이
물에 비치니 두 마리가 되었다.
희원에서 나와 용인 공원으로 가는 길 에버랜드 주차장에
엄청 많은 차들이 세워져 있어 깜짝 놀랐다.
주차장이 몇 개나 되는데 주중인데 이 정도이면
주말에는 정말 굉장하겠다.
나는 공원묘지는 처음 와 봤다.
봉분이 없는 산소는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다.
이제는 모두 이런 모양으로 산소를 만든다고 한다.
봉분 있는 산소는 관리하기 어려운데 이런 모습이 후손들에게는 편하겠다.
이모님 산소.
우리가 와도 반겨주시지도 않고 불러도 대답하시지 않고
이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 이곳에 계시니 마음이 아프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며칠 전 온 눈이 아직 녹지 않아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다.
이모님 산소에서 바라본 공원묘지.
우리가 큰 이모집 동생들보다 먼저 도착하여 인사를 먼저 드렸다.
산소 앞 제단이 좁고 눈이 녹아 질척 거리니
엎드려 절을 할 수가 없어 모두 허리 굽혀 반절을 하였다.
나의 큰 이모님은 슬하에 아들 셋, 딸 셋, 육 남매를 두셨다.
큰 아들은 공학 박사이며 영국 캠브리치 대학 교수이며
둘째 아들은 법무법인 변호사 사무실을 경영하는 변호사이고
셋째 아들 부부는 부산에 있는 대학 교수들이다.
큰 딸은 문학 작가이며 책을 열 권 이상 출간했고 유명 문학상을 여러 번 수상하였고
둘째 딸은 음악 연주자로 활동하며
막내딸은 어머니를 40년 이상 모시고 살며
큰 아들은 의사로 서울의 5대 대형 병원에 근무하고
작은 아들은 약사이며 약국을 경영할 정도로 잘 성장시켰다.
이모님께서 평소에 근면 검소하시고 남에게 많이 베푸셨는데
나도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많이 입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에게는 어머니처럼 챙겨 주셨다.
용인에서 나와 길 막히기 전 부지런히 달려 부천으로 와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우리는 약간 어중간 한 시간에 가서 대기는 하지 않았는데
식사 시간에는 대기를 많이 하는지
캐치테이블이 있다.
셀프바의 반찬들.
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홀이 상당히 큰 편이다.
메뉴를 처음 볼 때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이해가 안 되었다.
자세히 보니 뜰안채밥상은 1인당 한 개씩 주문하고
아래 단품을 4인 테이블에 1가지 이상 주문해야 한다고 한다.
반찬을 두 곳으로 나누어 나왔다.
우리는 단품으로 고등어구이와 꼬막무침을 주문했다.
고등어구이와 꼬막 무침에 나오는 밑반찬의 가짓수가 많으니
두 곳으로 나누어 나왔다.
가지 튀김과 잡채와 연근 들깨 무침이 나왔는데 모두 맛있고
그릇들이 고급스러워 대접받는 기분이다.
밑반찬들이 깔끔하고 맛이 있지만
그중 청국장 맛이 일품이었다.
서빙하는 종업원 복장이 깔끔하고 단정해서 좋았다.
장갑이 검정색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걸....
요즘은 식당에 모두 검은색 장갑을 끼고 서빙하니 좀 좋지 않다.
물론 위생 장갑이라고 하지만....
입구에 청국장과 제공되었던 반찬들을 판매하고 있다.
대기할 때나 식사 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
이모님은 다시 오시지 못하는 먼 길 떠나셨는데
살아 있는 우리는 맛있는 식당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사람 사는 게 어쩔 수 없다.
이모님 가신 20 여일 지난 며칠 전,
명륜동 작은 이종동생이 어머니 보내고 처음으로 혼자 있다 하기에
나와 작은 이모집 동생과 갔다.
이모님의 막내딸인 동생은 태어나서 어머니를 떠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해외여행 갈 때 며칠씩은 떠나 있었지만....
이모님 댁에서 이모님의 대한 추억도 이야기하고 놀다
점심 식사하기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모님 집 근처에 있는 파스타와 피자 전문 식당.
" 아도레 쿠치니 "
명륜동 대로변에서 약간 안쪽에 있는 식당인데
규모도 크고 깔끔하여 분위기 좋다.
동생들이 의논하여 주문하며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는데
이런 음식은 뭐가 뭔지 잘 모르니 동생들에게 일임했다.
별모양의 피자 "감베리 스텔라 "
모양도 예쁘고 끝의 삼각형에도 치즈가 들어 있어 맛있다.
주문하지 않았는데 서비스로 나온 샐러드.
집 가까이 있어 동생들이 자주 가기도 하지만
같은 성당의 교우라며 서비스로 주셨다.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이라 오래 있을 수 없어 일어났다.
근처에 있는 카페로 이야기를 더 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가정집을 개조하여 카페를 만들었는데
시내 한가운데 있는 집으로 마당이 엄청 넓다.
햇살 좋은 봄, 가을에는 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기 아주 좋겠다.
나는 커피,
동생들은 허브티.
이모님 가신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처음 가시고 난 후 슬프고 속상했던 마음이 점점 엷어진다.
인간들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게 믿을 수 없다.
가신분 이야기하며 맛있는 음식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향긋한 차 마시고 이게 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일까?
먼 곳 가신 이모님께서도 우리가 매일 슬퍼하는 모습을 싫어하실 거라
스스로 변명하며
오늘도 예쁜 꽃 보러 가고 맛있는 음식 먹을 궁리를 한다..